저는 차가운 새벽을 대체로 이렇게 정의합니다.
귀를 열어 말을 듣고 골라내어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알려 주고,
나아가 생각 속의 맛을 나의 말로 끌어내는 것을 도와,
결과적으로 맛있는 술을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취향의 면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는 안내자로서의 바텐더가 있는 곳이라고요.
아무래도 바텐더는 손님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그 너머에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앞의 손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좋아하고, 무엇보다 편견 없이 들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바텐더의 조언을 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이를테면 저는 극도로 베르무트가 적게 들어가는 식의 ‘드라이’ 마티니는 거의 만들지 않습니다. 마티니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의 이야기로 남겨 둡니다.) 기본적으로는 손님이 좋아할 것들을 짚어 가며 따라가야 길을 잃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물론 술도 잘 만들어야겠습니다.
괜찮다는 의견을 듣는 무언가를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이해 속에서 변형하고 뒤트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술을 만들 때, 고전적인 칵테일에서만 차용하기보단, 수많은 것들을 조합해 새것을 끌어내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맛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그렇게 물리적인 형태가 다른 칵테일도 몇 종류 만들었고, 제법 잘 제공하고 있지요. 그저 기법을 흥밋거리로 여기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저런 식으로도 술을 즐겁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게 하고 싶은 거지요.
값 그래서, 술값에 사람의 손이 가는 값을 더해 가격을 정합니다. 제 주머니가 가벼울 때를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마셔 보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운 가격이면 마셔 볼 엄두도 낼 수가 없었지요. 잔의 값이 너무나 무거운 것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와중에 누군가에게 덜 좋은 추천을 하는 것도 막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람이라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 마음을 장치로 만들면 안심할 수 있지요.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것들은 같은 값이 남는다면, 인지 못한 사심조차 덜 들어갈 수 있다! ...를 바닥부터 심어 둔 것이죠. 청년몰이었기 때문에, 저는 싼 임대료를 바탕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탈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받은 덕입니다. 누군가에게 덕을 얻었다면, 저도 덕을 나누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가격 책정입니다.
다만 다른 가게에는 그 가게들의 특징, 사정, 임대료, 그 외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겠고요. 저희 가게의 가격을 다른 곳에서 기대하시면 몹시 곤란할 수 있다는 점을... 폐를 안 끼치는 방향으로 잘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기는 차가운 새벽에 비하면 비싸다'고 다른 가게에 클레임을 건 분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이번 행사에서 걱정되었던 점 중 하나가 가격 문제였습니다. 사전 미팅 때 차가운 새벽의 상대적 저가 책정이 다른 바텐더 분들의 고안이나 노동을 가벼이 보아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기를 바랐으므로, 미리 가게의 한 잔 값 정하는 방식에 대한 양해를 구했습니다. 다행히 바텐더님들이 흔쾌하게 가게의 특수한 형태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베이즐 헤이든> 스몰 배치 행사에서도, 차가운 새벽에서는 다른 바텐더 분들이 만들어낸 칵테일이 차가운 새벽의 방식으로 책정한 가격으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서울의 바텐더 님들이 만든 칵테일들의 가격은 바텐더님들이 실제로 일하고 계시는 곳에서 제공되는 것과는 가격이 크게 다를 예정입니다. 대신 완벽하게 같지 않을 테니(여러모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꼭, 다른 바텐더님들의 칵테일은 만드신 분께 직접 받아 드셔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값싼 가격으로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괜찮은 것을 추천받아 마셔 보는 경험을 여러 번 해 봐야, 새로운 잔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웬만하면 한 시간 일한 돈으로 먹을 수 있는 잔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저에게 여유가 있어 마땅히 나눌 수 있을 동안요.
가이드 맛있는 술을 마시는 시간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을 나누고 싶고, 자꾸 겁먹지 말라고 하고 여러 가지를 권하고 싶어 하지요. 지나쳐서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릴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만든 것에 대한 설명은- 지식 자랑보다는, 무엇이 어때서 어떤 식으로 느낄 수 있다는 가이드가 되는 말들을, 한 모금을 마신 다음 해 드리려 합니다. 타인의 말에 얽매이지 않고 잠시 이런저런 말들을 찾아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해서요. 언젠가 그렇게 짚어서 자신 안에 만들어낸 말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게요.
저는 운이 좋게도 여러 가지 지식을 머리에 넣고, 연결하고, 정리해 말하는 것을 잘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칵테일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할 때도 최대한 여러 가지를 알려 드리려 합니다. 스스로 만들어 보는 만큼 전문가의 필요성을 알게 되는 일이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흥미를 유지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바에 돌아오시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의 연장으로, 바텐더분들의 질문도 여러 가지를 제가 아는 한에서 해석해 답해 드리고 있습니다. 예전의 클래스도 그렇게 진행했었고, 괜찮은 반응을 끌어냈던 것 같습니다. 아는 것을 나누는 게 제가 술과 음식과 사람에게서 얻은 것과 시간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바텐더가 되기 전과 후
시작은 우발적이었으나, 가게를 만들기 전 몇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 전주에 없어서 아쉬웠던 것,
-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 업으로서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공부하고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이것을 지속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을 것.
아쉬운 것들을 모아 반영해 가게를 시작한 지 구 년째입니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잘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로부터 좋을 만한 것을 도출해내려 하는 일련의 일들을 계속한다'라는 부분에서 이 일을 계속 즐겁게 해 왔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바텐더로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시는 시간과 술과 사람들에서 많은 것을 받은 만큼, 앞으로도 무언가를 나누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바 안팎에서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유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원래 말이 많습니다(...)
아래에 이번 단지,를 만들 때 한 저의 고민을 나눕니다.
단지, 만드는 법
베이즐 헤이든으로 <단지,>를 만들 때 주요하게 생각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제 :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익숙해지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에스프레소를 잘 마시지는 않지요. 우유나 설탕처럼 마시기 편하게 하는 것과 함께하다가, 차차 그를 즐기는 방법을 알아 가며 세계가 넓어집니다. 편하게 만나 버번이나 위스키 자체에 익숙함을 만들 수 있는 방편을 궁구했습니다.
- 전제 2 :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즐거워질 때까지 익숙해지기 위해 너무 많은 심적-물적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고생하느니 그냥 손을 놓아 버리게 되고는 합니다. 너무 많이 들어가면 가격이 올라가겠지요. 스몰 배치 버번이 누구에게나 가벼운 값은 아니니, 기주로 많은 용량을 사용하지 않는 레시피를 고려했습니다. 다만, 원래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은 피하려고 했습니다.
- 설계에 앞서 : 우선 단순하게 맛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모르고 마실 때도 괜찮은 느낌을 전달하지만, 여러 가지 설명을 들으며 마시는 때는 베이즐 헤이든의 여러 가지 결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 입 더 마시고 싶은 맛에 이어, 알고 마실 때 더 즐겁고 많은 것이 느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자연스레 재료가 되는 술에도 흥미가 가겠지요.
- 설계 : 빵, 향기가 나는 쌀, 팝콘, 캐러멜, 따스한 스파이스와 차가운 스파이스, 차 같이 느껴지는 약한 타닌, 바닐라 등. 차곡차곡 호밀 증류주와 그리고 호밀이 더 들어간 버번인 베이즐 헤이든에서 가볍게 느껴지는 특유의 냄새들을 분류하고 그룹화했습니다. 뉘앙스와 특정한 향기들을 나누어 보강할 점과 지지할 점, 보완할 점을 정리했습니다.
맛과 향을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특히 남의 나라의 말을 사용할 때는 더요. '스파이시' 같은 것이 그렇지요. 우리의 말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향들이 다르거든요. 따스한 스파이스와 시원한 스파이스가 다 있는 술이지만, 시원한 스파이스를 강조하고 신맛을 사용해 향의 날을 세우는 것은 조금 호불호가 갈릴 음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빵 냄새, 약한 타닌의 뉘앙스, 캐러멜이나 바닐라로 느낄 수 있는 마무리 향기까지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단 느낌이 있는 음료의 그림들이 더 잘 떠올랐습니다. 향을 다듬고 보충하되, 텍스처를 바꾸어 전달하면 되겠다는 구상이 섰습니다.
- 재료의 구조 :
- 크림은 전체적으로 음료를 가볍게 만들면서, 기름에 녹을 수 있는 냄새를 비구개측까지 끌고 가서 늦게 피워올리게 하는 메신저로 적절했습니다. 도수를 낮추면서도, 지방은 무게가 너무 가벼이 느껴지지 않도록 돕기도 할 것이었고요.
- 콩가루는 생각보다는 존재감이 옅습니다. 흐릿한 고소함과 텍스처, 은은한 단맛을 담당하는 정도이죠. 곡식을 바탕으로 만든 술의 냄새를 조금 더 보강해 주는 역할도 하고요. 과하게 넣으면 텍스처가 너무 강해지고, 콩의 향기가 미숫가루의 텁텁함을 연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분량 조정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가게에서는 보석 저울을 사용하지만 부피로도 계량이 가능해야겠죠. 초기 설정값은 1.2그램이었지만, 계량을 고려해 1그램으로, 당의 분량을 매만져 마무리했습니다.
- 그리고 가능한 한 묵직한 페드로 히메네스를 이용해 베이즐 헤이든의 바닐라와 캐러멜, 팝콘 같은 냄새의 달콤함을 풀어냅니다. 다른 저울 팔에 타닌과 건과일의 뉘앙스도 더 얹습니다. 이러면 떫은가? 하는 착각으로 인해, 지나치게 달다고 느끼는 것은 막을 수 있게 됩니다. 아 그리고 원래 콩과 PX는 정말 잘 어울립니다. 여름 특선 메뉴 콩 소르베를 이참에 자랑합니다.
- 이런 식으로 층을 쌓아나가는 와중, 크렘 드 카카오는 아주 작은 넘침 방지 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적당한 양의 설탕과 -피라진-부타놀 등의 이름이 붙은 '초콜릿향'들이 자칫 뿔뿔이 흩어지기 쉬운 향들의 구심 역할을 합니다. 알렉산더에서도 크렘 드 카카오는 그런 역할을 하죠. 극단적인 형태의 알렉산더와 닮아있지만 여기서는 최소한도로 분량을 줄입니다. 과하면 '초코맛'이 튀어... 망하기 때문입니다.
- 사실 무언가의 레시피를 함께 공유하며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재현 가능성일 것입니다. 다른 버번과 사용하면 선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들 투성이일지도 모르는 조합이니까요. '아이구 뭐 적당한 양의 실험으로 적정한 비율을 만들었습니다. 쨘!' 했더래도 재현 가능성이 낮으면 참 곤란할 것입니다. 여기서 베이즐 헤이든의 낮은 도수는 큰 역할을 합니다. 혼합된 물의 분량이 이미 적당히 있다는 건, 물을 많이 더할 필요 없다는 뜻이죠. 셰이커 안에서 미리 휘저어 적당히 혼합해 두고, 짧게 셰이크해 열평형 온도까지만 온도를 낮춰 마무리하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도, 여러 잔을 만들어도 기복이 적은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잔을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주어야 할 수도 있는 행사 칵테일의 특징,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습관 차이 같은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 아무튼 요약 : 입력되는 정보에 혼란을 주어, 묘한 텍스처 사이사이에서 베이즐 헤이든의 향이 여러 면으로 변주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칵테일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대로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칵테일의 이름은 단지, 입니다. 내놓는 그릇도 단지 모양이고, only, 라고 읽을 수도 있고, 친구 부부의 앵무새 이름이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한-국-적-인-도-시 같은 컨셉 같아 보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그런데 이걸 노리진 않았습니다). 쉼표가 잘 보면 콩 모양 같기도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많지 않다 생각하기에, 무엇을 시그니처라고 말하는 것을 제가 많이 면구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유독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야자 님이 적절한 이름을 주셔서 오랜 혼란은 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이 칵테일에 조금 정이 갑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