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화도읍에 위치한 쓰리 소사이어티 증류소를 다녀왔습니다. 뜻깊고 기분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기계들과 멋진 공간, 귀여운 댕댕이와 함께하는 증류소의 멋짐에 대한 내용은 다른 바텐더님들이 워낙 많이 남겨 주셔서, 정원 진으로 칵테일을 만드는 이야기만 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배치의 정원 첫 배치의 진을 먼저 맛보았습니다. 두 배치 모두 새끼삼, 깻잎, 솔잎, 천초, 라벤더, 고수 씨, 계피, 카다멈, 오렌지와 레몬의 껍질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몰트 스피릿의 풍미도 풍미지만 카다멈이 두드러져 보통은 둥글게 올라오는 오렌지를 오히려 날카롭게 느끼게 만들 만한 청량한 향기가 감돌았지요. 라벤더도 바로 카다멈 뒤로 치고 들어왔고요. 향이 차곡차곡 배열된 듯하게 느껴져서 재미있었고, 식물들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어서 좋았었습니다. 많이 맛보지 못하여 약간의 시식(?) 메모 정도만 남아 있지만, 첫 번째 배치 레시피로 또 나온다면 기꺼이 구매할 만한 맛이었습니다.
두 번째 배치의 정원 (주의: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아무 말이 나옵니다) 이 진은 Graanjenever와 Moutwijn Jenever 사이쯤 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향을 내는 식물이 줄어든 만큼, 조금 더 쿰쿰한 몰트와인 특유의 냄새를 풍깁니다. 식물들을 조금 더 줄였다고는 하지만 첫 배치보다 시트러스가 조금 더 느껴졌습니다. 아마 초피겠지요. 초피가 운향과 식물-시트러스의 친척-이기 때문에 공유하는 냄새가 있는데, 그래서 사용한 걸까?라고 메모장에 적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별 생각을 다 합니다. 그리고 그린 노트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향기가 스쳤습니다. V8주스에서 느낄 수 있는 셀러리 풍미처럼요. 카다멈이 줄어서 느껴지는 거겠지요. 이게 새끼삼의 느낌인 걸까요? 추측해봤지만 새끼삼을 먹어 본 적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새끼삼을 한 번 먹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향의 볼륨이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은 카다멈의 감소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뿌리나 대지의 냄새를 가진 향미가 줄어서일 것이라는 추측도 들었습니다. 엿기름 발효된 냄새-효모가 비타민 B군을 만들 때 생성하는 특유의 냄새, 몸통을 길게 잡으면 남습니다-는 그런 냄새들이 강하면 조금 눌리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고수씨앗은 앞선 배치와 크게 차이가 안 났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무겁고 부드러운 단 향내가 남았지요. 특유의 고소한데 꿉꿉한 냄새가 마무리에 남았습니다. 칵테일로 만들 때는 이 향기 조절이 관건이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곁이야기 그냥 마시기에는 향을 조금 부담스러워하시는 분이 있고, 몰트 스피릿을 직접 만드는 증류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다른 비율로 두 번째 배치의 정원을 만들었고, 현재 시장에 풀려 있는 것은 두 번째 배치라고 했습니다. (배치를 바꿔 가며 생산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진 자체의 몸체가 힘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물의 영향이지 싶었습니다. 물의 경도가 궁금해 여쭈었으나 남양주의 물을 사용하고, 그 외에는 비밀이라고 하셨습니다. 산이 많은 곳이니 어느 정도 경도가 높을 걸 예상할 수 있었어요. 남양주 화도읍의 정수장 수질검사표를 조회했더니 역시나 조금 높은 경도의 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상당히 경도가 낮은 물이 취수되기 때문에 수돗물도 경도가 낮은데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방향 설정 어쨌든 이 술은 맛있는 술입니다. 그래서 이 술을 맛있게 풀어낼 구석은 더 많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이렇게 저렇게 해 볼 의욕이 날 테니, 조금 텀을 두고 다른 분들이 이 진을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관찰했습니다. 주로 향이 강한 생-식물 재료, 신맛을 사용하시더라고요.
칵테일을 몇 가지 설계하는 초기의 시도에서는 저도 신 맛을 여럿 사용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풀어 본다면 올드패션드의 문법을 가져와 보기로 했지요. 달고 묵직하고 스파이시한 걸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복잡성을 위한 다른 향기들은 생 식물이 아닌 가공된 식물 재료를 사용해 보충하는 방향으로요. 생 식물 재고 관리는 힘들잖아요.
정원을 어느 정도 남길까 생 재료와 신 맛을 사용할 때의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자극적인 방향이 되기 쉽기 때문에, 술의 바닥부터 깔려 있는-섬세하고 흐릿한 인상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냄새들을 느끼기가 조금 어렵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묵직한 뿌리들의 냄새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몇몇 냄새는 조금 느끼기 어렵게 만들어야 마시기 좋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몰트 스피릿-몰트와인에서 나는 쿰쿰-하고 달달-한 냄새를요. 이 냄새는 엿기름/몰트의 아밀라아제로 인해 전분이 맥아당/엿당으로 전환될 때 부가적으로 생성되는 냄새이고 저는 꽤 좋아하지만 호불호가 어느 정도는 있는 냄새입니다. 식혜를 다 만들고 보존을 위해 끓일 때도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은근하게 뜸을 들여 날려보내고는 하지요.
어떻게 만들까 재현 가능성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집에서도 따라해 볼만한 재료를 쓰고 싶었습니다. 만들기도 쉬우면 더 좋고요.
몇 가지 다른 시도 뿌리의 단맛을 내는 비트와의 조합, 크림과 카시스와 이소아밀아세테이트의 바나나 같은 향기를 활용한 조합, 호두와 헤이즐넛의 고소한 향기를 사용한 조합 모두 좋은 방향으로 풀 수 있었지만 역시 그래도 한국 술이니 한국의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쉽게쉽게 가자면 식혜나 모주를 사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건 홈그라운드 이점을 과하게 쓰는 것 같았습니다(모주 타면 알기 쉽게 맛있더군요). 그리고 맑은 술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무엇을 사용했나